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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나다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본 글은 ‘Free!’의 애니메이션 2기 이후~극장판 ‘테이크 유어 마크’ 이전의 시점을 다루고 있습니다.

*글이 진행되는 동안 드림주가 학업으로 인해 힘들어하거나 지쳐하는 모습이 언급됩니다. 심한 정도는 아니나, 이러한 내용이 불편하신 분들은 글의 열람을 지양해 주세요.

어둠이었다. 아무리 밝은 빛을 비춘다고 하여도 사라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 나를 잡아먹고, 잡아먹힌 내가 결국 주변인들까지 갉아먹게 되어버릴, 그런 것이었다. 더운 여름 바람이 물러가고, 나를 짓누르기 시작한 것은 다른 것도 아닌 깊고 무거운 어둠이었다. 겨우 족쇄를 풀고 걷기 시작한 나를 위에서 짓누르는 건 불안감이었고, 앞을 가로막은 건 변화였다. 결국 나는, 다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이상했다. 유즈나가 자신을 피하기 시작한 것이다. 혹시 잘못한 것이 있나 싶어서 고민하고, 오해받을만한 일이 있었는가 싶어서 지난 며칠을 되돌아봤지만, 생각나는 일은 없었다. 뭔가 실수를 한 건가. 질문을 수없이 자신에게 던졌으나,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싸운 것도 아니었다. 그러기는커녕, 최근의 두 사람은 대학 입시로 인해 바쁜 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제대로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눌 시간조차 없었다. 혹시 그런 일상에 지친 자신이 무언가 잘못한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결론을 도출해 낸 하루카였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도달할 수는 없었다. 직접 물어보려고 해도 눈만 마주치면 피하는 탓에 말을 걸 타이밍조차 잡을 수 없었다. 예전 같으면 수영부에서 살짝 말을 걸었을 테지만, 지금 3학년들은 사실상 퇴부한 상태였다. ―물론, 이따금 놀러 가서 자신들의 후배들과 시간을 보내고는 했으나, 수영부에 나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3학년끼리 정한 암묵적인 일상이었지 필수가 아니었다. 게다가 유즈나는 이마저도 나오지 않은 지 꽤 된 참이었다.― 자신은 가끔 수영하다 간다지만, 유즈나는 애초에 매니저였고 수영에 깊은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니었다. ―본인조차 이따금 “난, 전국에 있는 모든 수영부 매니저 중 수영에 관심도, 지식도 가장 없을지 몰라.”라고 자조적인 어투로 말하고는 했다.― 결국 만날 수 있는 곳은 교실뿐인데, 쉬는 시간이면 무서운 집중력으로 공부하고 있는 탓에 말 한마디 제대로 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바로 뒷자리인데, 손을 뻗으면 작은 등이 닿을 것 같은데, 지금만큼은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지 알 수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창밖이 오렌지빛이 가득 내려앉을 때까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잠시 담임선생님께 상담 받으러 간 친구를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한참 창 너머로 시선을 두고 있던 그가 앞자리로 시선을 돌린 것은, 굳게 닫혀 있던 교실 문이 열린 것과 비슷한 타이밍이었다. 당연히 친구일 거라 생각하고,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는 말과 함께 그가 입을 열었을 때였다.

 

“… 하루.”

 

그의 목소리보다 먼저 교실을 가득 채운 것은, 오랜만에 듣는 사람의 것이었다. 여전히 맑고 차분한, 그러나 평소보다 더 지친 듯한 목소리였다. 느린 속도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목소리의 주인공은 놀란 듯 눈동자를 두어 번 깜박이며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마 아무도 없는 교실이라 생각하고 열었는데 사람이, 그것도 하루카가 있어서 놀란 것이 분명했다. 그도,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예상 밖이라 놀란 참이었다. 한참 동안 아무런 말 없던 유즈나는 몇 번인가 입술을 달싹이다가 자신의 자리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오랜 시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으나, 하루카도 먼저 물어보지는 않았다.

 

“미안해.”

 

짧은 한마디는 울음과 피곤함에 젖어 있었고, 주어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루카는 무엇을 지칭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최근 며칠, 자신과 수영부 모두를 피해 다니고 연락마저 제대로 받지 않은 것을 뜻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구태여 묻지 않았다. 하루카는 그저, 시선을 아래에 고정하고, 무릎 위에 올린 주먹에 힘을 준 채 눈물을 참고 있는 자신의 친구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분명 무슨 말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가 묻지 않기를 원했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자 유즈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에 대해 정말 잘 알고 있음에 대한 감사와 어째서 묻지 않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푹 숙인 시선을 들 수 없었다. 이유를 물어본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그 눈과 시선을 마주한다면 가득 차오르는 눈물을 참을 자신이 없었다. 교복 치마 위로 올린 주먹 쥔 손이 아프게 느껴졌다.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은 말은 많은데, 어떻게 털어놓는 것이 좋을지 몰라 머리가 아팠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은 알지만 사실을 털어놓으면 지금의 생활마저 산산조각이 날 것 같아 두려웠다. 우물 밖을 나온 줄 알았는데, 자신은 여전히 우물 안인 것 같았다. 무얼 봐도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자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런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져서, 무기력한 모습이 싫어서 유즈나는 별다른 말 없이 설움에 젖은 목소리를 삼키고 제 눈을 감았다.

유즈나. 그 위로 내려앉은 건 어떤 질책의 말도 아닌, 자신이 좋아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던 목소리였다. 가득 차오르는 눈물을 억지로 눌렀다. 겨우겨우 뜬 눈앞에는 하루카가 가만히, 유즈나의 손을 잡고 바라보고 있었다. 교실 바닥에 무릎을 굽히고, 평소랑 다를 것 없는 표정으로, 그의 두 손을 잡고 있었다.

 

“하루…?”

“무슨 일, 있었어?”

 

잠깐 벌어진 음절 사이가 무거웠다. 그렇게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면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는데. 유즈나는 그런 말을 입속에서 굴렸다. 너는 어째서 이렇게 다정한 걸까. 차마 묻지 못한 말을 삼켰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분명 걱정하겠지. 삼킨 말의 뒷편에서 또 다른 생각이 피어올랐다. 더듬거리며 입을 연 입술 사이에서 진실과 거짓이 섞인 말이 흘러나왔다.

 

“… 그냥, 요즘 잠을 못 자서. 그래서… 그래서, 그래.”

 

완전히 거짓은 아니었으나, 완전한 진실도 아니었다. 음절과 문장 사이의 공백이 무겁다. 그 무게를 온전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솟구쳤다. 유즈나는 느린 속도로 전혀 다른 말을 꺼냈다. 아직 집에 안 갔어?

 

“마코토 기다리는 중이었어.”

“아. 마코토는?”

“진학 상담.”

 

진학 상담이라는 말이 무겁게 울렸다. 굽혔던 무릎을 편 하루카가 제 뒤에 있던 의자에 앉아 유즈나를 마주 봤다. 꽤 오랜만에 나누는 연인 간의 대화로 보이지 않을 분위기였다.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하루카가 입을 열었다. 침묵으로 인해 마른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유즈나는.”

 

주어도, 물음표도 없는 문장이었지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유즈나는, 한참 동안 제 무릎 위에 올려진 손을 바라보다가 급한 동작으로 책상에서 교과서 몇 권을 꺼냈다. 그리고는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 책. 두고 간 게 있어서.”

 

있지, 하루. 서둘러 덧붙이는 목소리에 다급함이 섞여 있었다. 하루카는 작은 대답을 하며 그다음 말이 오기를 기다렸다. 몇 번인가 입술을 달싹이던 유즈나가 건넨 말의 무게는 무겁지 않은 것이었다. 요즘, 수험 때문에 연락 자주 못 해서 미안해. 당황만이 서려 있던 눈동자는 금세 애정이 어린 감정으로 차올라 있었다.

 

“… 학교에서는 보잖아.”

“그, 그래도…! 학교에서는 손잡는 것도 눈치 보이니까….”

“누구한테 잘못했어?”

“그건 아니지만….”

 

말끝을 흐리던 유즈나가 옷자락을 붙잡은 손가락을 작게 움직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몇 번인가 달싹이던 입술을 멈췄을 무렵이었다.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던 하루카가 자리에서 일어섰고 조용히 다가갔다. ―유즈나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잘못했나 싶어서 어깨를 작게 움츠리고는 뒷걸음질 쳤다. 이내 얼마 안 가, 그의 다리가 의자에 부딪혀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애인의 눈을 응시하고 있었으며, 두 손은 책상 끝을 강하게 붙잡고 있었다.― 하루카는, 책상을 강하게 붙잡고 있는 유즈나의 두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 포갰다. 순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정적이 두 사람 사이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하루카는 한참 동안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창 너머에서 흘러들어오는 오렌지 빛깔을 띠고 있는 노을이, 퍽 괜찮은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자신을 보며, 잔뜩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는 유즈나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말의 무게가 꽤 어두운색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피한 거야?”

“피한 적 없는데…!”

“누구 눈치가 보이는 건데. 아이이소? 마코토?”

“그 두 사람에게는 절대 아니긴 한데….”

 

그러니까, 그게…. 오랜 시간 말을 우물거리던 유즈나가 문장의 끝을 흐리며 시선을 피했다. 분명 숨기는 것이 있다. 그 모습을 보며 하루카가 내린 결론이었다. 누군가의 눈치가 보이는 것도 아니고, 수험으로 인해 바쁘다고 해도 일주일 넘게 연락이 안 되던 것도 이상하다. 최근 하교 시간도 어긋나는 바람에, 자신이 걱정하고 있음을 알고 있을 유즈나의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유즈나가 맞다면, 그는 절대 이런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긴 시간 연락이 안 된다면 그럴 거라고 미리 이야기할 사람이다. 적어도, 학교에서는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루카는 지그시 유즈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어딘가 불안한 듯 흔들리고 있었다. 초조함과 두려움이 섞인 얼굴이었다. 그 표정을 보니 더 묻고 싶던 마음도 눈 녹듯 사라졌다. 의심이 풀린 것이 아니다. 그저, 더 밀어붙일 수 없을 뿐이었다. 결국 그는 오랜 시간 묻고 싶던 말을 삼켰다.

 

“유즈나.”

“응. 저… 하루. 혹시 화났어?”

“그런 거 아니야.”

“계속 무서운 표정으로 쳐다봐서. 정말?”

“응. 화 안 났어.”

 

다행이다! 그의 말에 환한 웃음과 함께 유즈나가 내뱉은 말이었다. 얼굴에 가득 피어 있던 긴장, 초조함, 불안은 어느새 사라져 없어져 있었다. 그 대신, 밝은 웃음을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하루카는 저도 모르게 안심했고 자신이 생각 이상으로 유즈나를 걱정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마음속 어딘가를 불안으로 흔들렸으나, 그는 애써 눈치채지 못한 척했다. 가까이 다가갔던 몸을 빼던 하루카는 그의 셔츠를 잡아당기는 힘에 의해 그대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강한 힘으로 셔츠를 잡아당긴 유즈나는, 계속 입가에 맴돌던 말을 조심히 내뱉었다.

 

“…하루.”

“응.”

“연락에 소홀해지고, 계속 피해 다녀도. 내가 하루를 좋아하는 건 변하지 않아.”

 

열린 창 너머로 바람이 들어왔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것만 같았던 긴장의 끈이 한순간 끊기는 것만 같았다. 셔츠를 쥔 손에 힘을 준 유즈나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망설임과 울음이 뒤섞인 소리였다. 나는 이와토비에 와서 꿈을 찾았어. 그렇게 말을 이을 때, 유즈나는 하루카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잃고 싶지도, 잊고 싶지 않았던 내 꿈. 이와토비에 와서, 하루를 만나서, 나에게 소중한 걸 지키는 방법을 배웠어.”

 

그리고 더 커졌어. 욕심이란 걸 품게 됐어. 지금 내 꿈은, 이와토비에서 졸업하고, 수영부의 매니저로 기억되고, 하루랑 함께하는 거야. 바람이 불었고, 유즈나는 꼭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오랜 시간 잡고 있던 탓일까. 손이 떠나간 자리가 아직도 뜨거웠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이곳이, 자신들이 다니는 학교가 유즈나에게 있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다. 유즈나가 한 말은, 어쩌면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무거운 말일지 모른다고 하루카는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정확히는,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 무슨 말인가 응어리 치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이지 않았다. 아, 그대로다. 하루카는 자조 섞인 생각을 흘려보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세계로 나가고 싶은지, 원하는 것에서 고개를 돌리던 그때와 똑같았다. 자신이 직면하고, 생각하고, 바라봐야 할 것은 앞에 있는데. 어떤 말을 해서 그를 위로하고, 어떤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이번에도 아무런 말을 못 하는 건가. 그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지만, 결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없으리라는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만 스칠 뿐, 결국 하루카는 넘실거리는 생각 속에서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저, 올곧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의 손을 잡는 것뿐. 그 외에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조용히 흐르던 약간의 정적을 깬 것은 유즈나 쪽이었다. 고마워. 짧은 감사 인사와 함께 책상 위에 올려둔 가방을 챙기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나, 밖에서 엄마가 기다리셔서. 먼저 가볼게. 말을 마친 유즈나가 천천히, 잡고 있는 손에서 힘을 뺐다. 맞잡고 있던 손이 천천히, 서로를 붙잡고 있던 손가락이 떨어지기 싫은 듯 오랜 시간 서로에게 얽혀 있었다. 느린 동작으로 교실을 빠져나가던 유즈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교실을 잔잔하게 울리던 목소리가 물에 젖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표정이 어땠는지, 하루카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마주할 자신은 없었다. 내일 보자. 마지막 말이 문장에서 단어로, 단어에서 음절로 조각나 흩어지는 오랜 시간 동안, 그는 가만히 유즈나가 서 있던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불은 켜지 않았다. 방은 어두웠으나, 그편이 훨씬 나았다. 모든 걸 집어삼킬 것만 같은 적막 속에서 하루카는 아무렇게 가방을 내려두고 침대에 몸을 눕혔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 내내, 하루카의 머릿속은 조용한 폭탄이 터지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묻는 마코토의 물음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답하는 자신의 모습이 유즈나와 닮아있음을 깨달았을 때, 그는 이미 자신의 방문 앞에 도착한 상태였다.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생각은 사나운 파도가 치는 것 같았다.

 

‘욕심이란 걸 품게 됐어. 지금 내 꿈은, 이와토비에서 졸업하고, 수영부의 매니저로 기억되고, 하루랑 함께하는 거야.’

 

유즈나가 했던 말이 조각처럼 흩어져 귓가에 울렸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이었다. 마치 어딘가로 떠나려고 하는 사람처럼. 문장에서 음절로, 음절에서 단어로, 단어에서 더 작은 단위로, 말소리를 끊임없이 부서져 내렸다. 그것을 몇 번이고 곱씹던 하루카는 때마침 걸려오는 전화에 생각을 멈췄다.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 핸드폰은 반가운 사람의 이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아마 자신은 이 통화에서도 묻지 못할 것이다. 안개가 낀 것 같은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데도 전화를 받는 것은, 불편함을 느끼는 것 이상으로 지금은 유즈나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심장이 크게 펌프질하고 식은땀이 미끄럼을 타는 것이 느껴졌다. 서둘러 교실을 빠져나온 유즈나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걱정이 담긴 눈동자가 아직도 선명했다. 지금이라도 사실을 고할까. 그런 생각이 흘렀으나 이내 단념했다.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은, 자신이 지켜야 했다. 유즈나는 차분히 자신에게 있어 소중한 것들을 나열했다. 몇 번을 나열하고 생각해도 결국 첫 번째는 하루카였다.

침전물이 가라앉은 물을 흔든 것처럼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짧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최근에 단둘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던가. 기억을 애써 더듬어 보지만 흐리기만 할 뿐이었다. 말하지 않았지만, 분명 걱정하고 있었다. 묻고 싶은 것들이 많은 것 같았는데, 애써 참는 듯했다. 적어도 유즈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런 점이 좋았다. 부산스럽게 묻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건네는 걱정과 염려를. 눈빛으로, 행동으로, 목소리로 전해져 오는 것들이, 사랑받는다는 기분이 들게 해서 좋았다.

차분해진 마음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순간, 무너져 내렸다. 어둡고 차가운 기운마저 도는 방이 싫었다. 불을 켜고 침대 위로 올라가면 나아질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책상 앞에 앉아 억지로 책을 펼치고 바라보았지만, 머리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읽고 또 읽는데, 책의 내용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마치 이 세상에 자신만 혼자 있는 기분이 등줄기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기분은 영 달가운 것이 아니었다. 조금 쉴까. 그런 생각을 하며 기지개를 켜던 유즈나는 저도 모르게 눈앞에 놓인 핸드폰으로 손을 가져갔다. 망설임 후에 찾은 번호는 지금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었다.

 

하루카는 자신의 귓가로 쏟아지는 목소리에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여전히 수많은 의문이 그의 머릿속을 채우고 빠져나가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그런 것은 아무런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자신들은 수험생이었고,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니까 공부에 매진하는 것 즈음은 특별한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유즈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하루카는, 자신의 마음속에 피어오르던 의심의 불꽃을 끄기 시작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바뀌는 것은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유즈나를 믿자. 그렇게 생각했다.

한참 이야기를 이어가던 목소리에 졸음이 서리기 시작했다. 슬쩍 시선을 돌려 본 시계는 꽤 늦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시간까지 깨어있는 것은 꽤 오랜만이라 하루카는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그걸 눈치챈 걸까. 전화 너머로 여전히 맑은 목소리가 넘어왔다. 하루, 혹시 졸려? 유즈나는. 음… 졸리긴 한데 하루랑 더 이야기하고 싶으니까 참을 수 있어. 참 다정한 말이었다. 넘실거리는 생각을 진정하려 애쓰며, 하루카는 천천히 입가에 맴돌던 말을 내뱉었다. … 나도.

얕은 잠이 서린 낮은 목소리. 한 음절, 한 음절이 느리게 울리는 것이 좋아 유즈나는 한참 동안 대답 없이 있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전화하는 것이 얼마 만인지. 투박한 듯 보여도 그 속에 녹아든 자상함이 좋아서, 그는 여러 번 더 이름을 불렀다. 하루, 듣고 있어? … 응.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그러게. 그럼 슬슬 끊을까? 하루, 피곤한 거 같은데. 아직은 괜찮아. 그러나, 괜찮다는 단어를 내뱉으면서 하루카는 모순이라 생각했다. 사실은 꽤 오래전부터 한계였다. 자신이 어떤 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를 만큼 무거운 피로가 자신을 깔아뭉개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하지만, 전화 너머에서 울리는 햇볕 같은 목소리가 좋아서, 애써 무리라든가 졸리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유즈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루, 잠든 거 아니지?”

“아니야. 아직은.”

“혹시 주말에 약속 있어?”

“… 아니.”

 

또다시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 간간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잠깐, 잠깐만 기다려줘.”라고 간절하게 외치는 목소리가 섞여 흘러올 뿐이었다. 아, 더는 무리. 하루카가 그런 생각을 읊조렸을 무렵이었다. 아, 찾았다! 내가 라인으로 보내줄 테니까, 아침에 확인해. 뭔데 그래. 영화표! …영화? 응, 보러 가자.

 

자신이 내뱉은 말의 단어 하나, 하나를 되짚던 유즈나는 꽤 오랜 시간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문득 불안함을 느꼈다. 졸업이 다가오고 있었으나, 자신들은 명확하게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게다가 자신은 아직 센터 시험이나 논술시험도 잔뜩 앞둔 상태였다. 역시, 주말에 영화를 보자는 말은 갑작스럽고 또, 부담이겠지. 몽글몽글 피어나는 생각을 여러 번 되짚었다. 혹시 잠든 걸까. 하긴, 시간이 늦었으니까. 피어오르던 것들이 가라앉은 것은, 꽤 긴 시간이 지나서 하루카의 목소리가 울렸을 때였다.

 

“그래. 가자.”

“정말?”

“응. 유즈나 가고 싶잖아.”

“들켰어?”

“거짓말 서툴잖아.”

 

최대한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응, 그렇게 안 느껴졌어? 별로. … 아, 벌써 이렇게 늦었어? 하루 피곤하겠다. 유즈나야말로. 그럼 이제 정말로 전화 끊을까. 응. 하루 잘자. 유즈나도. 응, 학교에서 보자! … 유즈나. 응? 왜 그래? 무슨 일 있으면 말해. 졸음이 뒤섞인 그 목소리가, 꽤 단단하게 울렸다. 입을 열고, 고맙다는 말을 내뱉고 싶었으나 쉽사리 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천천히, 하지만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짧은 대답을 했다. 응.

아직까지 마지막 말이 귓가에서 어지럽게 울렸다.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말할까. 그런 생각이 바람이 되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전화를 다시 거는 일은 하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이어나갈 자신이 없었다. 다소 어지러운 마음이 가라앉자, 조금 전까지 시선을 두고 있던 책상 위를 바라보았다. 가고 싶은 대학과 학과에 관한 수많은 정보. 작년 센터 시험의 커트라인, 예상되는 논술 문제, 사회 이슈를 모아둔 종이가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몇 번을 생각하고, 고민해도 결론은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다다르기만 했다. 말한다면, 응원하고 지지해줄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 포기할 수 없는 꿈을 위해 매일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고 있다는 걸 알면 분명, 걱정할 테니까.

얼마 전, 성적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들켰다. 원하는 학교에 지원하지 못할 정도로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집 구성원 모두에게도,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1등이 아닌 성적표는 어색했다. 성적이 떨어진 것은, 온전히 내 잘못이었다. 수영부의 전국대회 준비를 핑계로 공부를 미루거나 평소만큼 꼼꼼하게 보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며칠 간의 피로가 쌓여 잠도 제대로 못 잔 상태로 시험을 봤으니, 한두 문제 정도는 제대로 읽지 못한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즈나는 자신이 수영부에 열중했던 것은 후회하지 않았다. 다만, 수영부와 학업을 제대로 양립해서 대학 진학도 착실히 하겠다고 한, 올해 초의 약속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성적을 올릴 테니 수영부 인수인계 전까지 전처럼 부 활동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약속하게 된 것이 이번 일의 시작이었다.

잠시 이전의 일을 떠올리던 유즈나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다시 생각해도 멍청했다. 그냥 평범하게 수영부에 나가면서, 실제로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척을 할걸. 그러나, 그 방법은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말 좋아하는 곳에서 지내는 소중한 시간을 거짓말하고 싶지 않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조금이라도 더 떳떳하게 그 시간을 누리고 싶었다.

 

‘중학생 때도… 이런 생각을 했었나.’

 

기억을 느리게 더듬었다. 그러나,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자신의 자유를, 꿈을,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을 위해 다른 학교로 진학하고 싶다고 선전포고를 했던 날. 유즈나는 문득 그때를 떠올리며 자신의 방을 한 번 둘러보았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으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정갈하게 정리된 방의 모습과 벽을 가득 채우는 책장 속 빼곡한 책. 그곳에 한참 눈을 두고 있던 유즈나는 시선을 천천히 옮겨 책상 위 가득 올려져 있는 사진을 바라보았다. 어릴 때 이후로 사진 찍는 것이 어색했는데, 지금은 자리가 없어서 곤란할 정도로 사진이 많았다. 사진의 시작을 따라가면, 그곳에는 수영부가 있었다.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는 이유, 자신을 ‘나답게’ 있는 것이 허락된 장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공간. 그건 거대한 돌고래였다. 자신은 돌고래였고, 수영부는 드넓은 바다였다. 돌고래쇼를 위해 학대받던 동물들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춰 생활하다가 나다울 수 있는 유일한 장소. 그곳이 수영부였다. 쉴 틈 없이 피어오르는 생각을 가라앉히고자 유즈나는 크게 숨을 골랐다.

 

‘수영부에 계속 있고 싶으니까.’

 

중간에 퇴부하는 것이 아니라, 매니저로서 착실하게 마지막까지 있고 싶었다. 인수인계하고,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그곳에서 나오고 싶었다. 시험이 끝날 무렵이면 이미 수영부는 인수인계까지 마친 상태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부 활동과 공부의 양립이 가능하다는 것을. 자신은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더는 그때에 머물러 있는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그러니까 괜찮아.”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니까. 그러니까, 난 괜찮아. 그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며, 유즈나는 다시 연필을 들었다. 힘듦을 뛰어넘을 정도로 소중한 장소며,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들과 함께하기 위함이라면 괜찮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유즈나가 정한 소중한 것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설령 그 방법이 자신을 갉아먹는 것이 되더라도 괜찮았다.

 

이상하다. 저번 약속부터 지워지지 않는 이질감에 하루카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을까. 그러나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야기하다가 대답이 없어서 돌아보면 졸고 있었고, 이따금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 유즈나답지 않게 차분히 있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안절부절하고 어딘가 초조한 것 같은. 그는 유즈나의 모습에서 얼마 전의 자신이 보였다.

기록을 신경 써야 하고, 승패가 중요한 선수의 길로 들어서야 하는가에 관한 고민을 하던 때. 결국 경기 중에 멈춰버렸던 순간. ‘진로’라는 말에 날카롭게 반응했던 날들. 아마 그때의 자신도 지금의 유즈나처럼 불안정하게 보였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은 전부 자신과 상관없는 것처럼 여겨질 것이다. 특히, 유즈나는 평소, 자기 일에 성실하게 임하던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의 말은 특히 듣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누군가에게 걱정을 끼친다고 생각하면 더 무리하려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무리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으나,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손을 곧게 뻗으면 바로 닿을 수 있는 거리인데, 그것이 되지 않았다. 결국, 하루카는 뻗었던 손을 거두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은 분하나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기다리기로 했다. 때가 된다면, 유즈나가 먼저 말해주리라 믿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깨닫는 것이 이토록 잔인한 일이라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즈나가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하여 하루카가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책을 아예 안 읽는 것은 아니지만, 유즈나처럼 이틀에 한 권씩 꼬박꼬박 읽을 정도는 아니었다. 국어나 고전문학이 취약한 과목은 아니었으나 ―물론, 특기 과목도 아니었다. 그의 특기 과목은 미술이나 기술가정 같은 것이었다.― 유즈나처럼 특기라고 불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유즈나처럼 정갈하고 깔끔하게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오래전의 문학에 관하여 명석하게 아는 편도 아니었다. 길게 이어지던 생각을 급하게 마무리하며 하루카는 깊게 들이마셨던 숨을 내뱉었다. 가까운 사이라고, 꽤 긴 시간을 함께하고, 수많은 날을 공유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날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유즈나라고 해서 수영에 잘 아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 입부할 때까지만 해도 “… 수영, 잘 모르는데.”라고 했었으니까. 그동안 유즈나가 수영부에 있으면서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하고, 노력을 거듭해 왔는지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한동안, 두꺼운 책을 들고 와서 읽기도 하고 모르는 것이 있다며 물어보기도 했으니까. 유즈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언제나 자신을 도와주고 있었다. 새삼스럽지만, 유즈나에게는 고맙다는 말 이상의 것으로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지금의 자신도 할 수 있는 것들로 유즈나를 도와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하루카가 늘어뜨리던 고민의 끈은 그의 손에 무언가 닿음으로 인해서 끊어졌다.

책상 서랍에 무언가 있었다. 살짝 꺼내 보니 연한 갈색 포장지를 하고 있는 초콜릿이었다. 그제야 하루카는 이것이 왜 자신의 자리에 있는 것인지 떠올릴 수 있었다. 최근 며칠 유즈나의 상태가 안 좋아 보였기 때문에, 좋아하는 걸 먹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해서 샀던 것이었다. 아침부터 공부에 몰두하고 있는 걸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아직 전해주지는 못한 상태였다. 평소 어떤 브랜드의 초콜릿을 좋아한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유즈나의 ‘좋아한다’라고 하는 것은 평소 자주 사는 브랜드라는 의미 이상은 아니다. 그는 대체로 모든 종류와 브랜드의 초콜릿을 좋아한다. 하루카는 자신과 다른 그런 점이 신기했다.― 그가 이름을 부르기 위해 입을 열었을 때였다. 나나세 군! 선생님이 잠깐 부르셔. 그 부름에 하루카는 내뱉으려던 말을 삼켰다.

 

“유즈나.”

 

작게 부르는 목소리에 책에만 고정되어 있던 시선이 위를 쳐다보았다. 풀이 죽은 듯한 눈빛이 멍하니 하루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즈나가 입을 연 것은 수 초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 아, 하루! 무슨 일이야? 입가는 호선을 그리고 있었으나, 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무리하지 마. 하려던 말은 차마 내뱉지 못하고 또다시 삼켰다. 온종일 내내 삼키는 것뿐인 자신의 모습이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루? 다시금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아무거도 아니라는 말과 함께 조용히 초콜릿을 올려두었다. 천천히 하루카의 얼굴과 초콜릿을 번갈아 보던 유즈나가 환한 웃음을 그렸다. 나 먹어도 돼? 응, 유즈나 줄려고 산 거야. 고마워! 좋아, 하루가 준 거 먹고 다음 시간 수업도 열심히 들어야지. 응. 하루, 선생님이 부른 거 아니야? 어서 가봐. 알겠어.

 

하루! 그의 목소리에 하루카가 걸음을 멈췄다. 왜 그러냐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소란스러운 교실이었으나, 신기하게도 둘만 존재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유즈나는 눈을 곱게 휘어 접으며 또박또박, 입을 움직였다. 고, 마, 워. 한 글자씩 끊어 전한 감사 인사 뒤에 어서 가보라는 손짓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루카가 교실 밖으로 나가는 걸 확인한 후, 그는 그동안 참고 있던 더운 숨을 내뱉었다. 다행히, 이상한 점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어제 저녁부터 열이 있었으나, 아침에는 내린 것 같아 안심했는데. 머리가 지끈지끈 울리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의 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조금 전, 하루카가 부르는 것을 바로 알아채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침에 양호실 가서 해열제도 먹었고 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뒤집어지는 것 같이 울렁이는 속은 나아지지 않고 있었다. 안 되는데, 공부해야 하는데. 그러나 연필을 쥔 손에 힘은 들어가지 않았고, 눈앞에 놓인 책의 글자로 어지럽게 춤을 추고 있었다. 대체 왜. 나는 대체 왜…. 왜 중요한 순간에…. 좋아하는 것을 지키려면 조금이라도 더 읽고, 공부해야 하는데. 여기가 너의 한계라고 누군가 비웃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조금만 더, 시험까지 얼마 안 남았는데. 수영부도, 공부도 제대로 양립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데. 다시 눈앞이 빙글 돌았다. 깊게 들이마신 숨을 내뱉었다. 뜨거운 숨이 몸을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쉬고 싶지만, 여기서 조금이라도 멈추면 잡아먹힐 것 같았다. 이제 겨우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고등학교 졸업으로 다시 꼭두각시 같은 생활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까 공부해야 해. 그러나 손이 생각처럼 움직여지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앞에 연필이 있음에도 잡을 수 있었다. 목을 따갑게 찌르는 고통이 힘들었다. 점심시간에는, 쉬면 되니까. 그런 생각으로 자신을 어르고 달래며 느린 동작으로 손을 뻗었다. 나는 왜 이렇게 약한 걸까. 좋아하는 것도 내 힘으로는 지킬 수 없어. 그런 생각이 커다란 원을 그리다가 작은 폭발음을 내며 터졌다. 책 위로 쏟아지는 눈물 자국을 본 순간, 유즈나는 처음으로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담임선생님과 이야기를 마치고 교실로 들어가던 하루카는 걸음을 멈췄다. 어딘가 아픈 것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고 다가가던 그는 수업 시작을 알리는 소리에 자신의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십분 뒤, 하루카는 어디가 아픈지 묻지 못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게 된다.

수업은 특별한 것 없이 흘러갔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고, 다들 삼학년이라는 분위기 때문인지 약간 경직된 분위기였다. 다만, 하루카는 수업을 듣고 있는 중은 아니었다. 조금 전에 마음에 걸리던 유즈나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음이 신경 쓰인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로는,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수업이 오 분 정도 흐른 뒤였다. 그렇기 때문에 애써 수업을 따라가려고 하지 않았다. 애초에 고전 문학은 어려웠다. 수업을 제대로 들어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따라서 하루카는 수업을 듣는 대신, 시선을 창밖에 던졌다. 하늘이 눈부실 정도로 푸르고 맑았다.

그는, 조금 전 교무실에 불려갔을 무렵을 떠올렸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원서를 쓰기로 한 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나누는 평범한 고등학교 삼학년과 담임의 대화였다. 그 뒤는 수영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하루카가 떠올리고 있는 것은 상담의 끝부분이었다. 그럼 교실로 돌아가겠다는 그의 말에 미호는 다소 성급한 동작으로 하루카를 막았다. 저… 나나세 군. 요즘 이비 양, 괜찮니? 2학기에는 한 번도 상담하지 않아서. 저번에 본인은 “괜찮아요. 궁금한 것이 생기면 여쭤볼게요.”라고 했지만…. 걱정 어린 말에 하루카는 특별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요즘 무리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건 어떤 일이든 대충하지 않는 유즈나의 성격인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 전부였다. 오늘이라도 괜찮으면 상담하자고 전해줄래? 미호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던 하루카는 문득, 앞자리의 사람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고전 시간이었다. 이 시간은 언제나 유즈나가 가장 들떠 있는 시간이었다.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배우면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고,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행복하다고 했다. 웃는 얼굴로 그 이야기를 하던 모습과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는 뒷모습이 겹쳐 보였다. 평소의 바르고 곧은 자세가 아닌 웅크린 듯한 자세가 마음에 걸렸으나, 수업 시간이었기 때문에 물어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따가 물어봐야지.’라고 생각하고 말뿐이었다.

그럼 다음 문단은 이비 양이 읽어줄래요? 미호의 목소리가 지나가고 짧은 정적이 지나갔다. 보통 이즈음이면 유즈나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교실은 정적 그 자체였다. 미호도 당황한 탓인지 두어 번 더 그를 불렀다. 그제야 유즈나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천천히 의자를 밀며 일어났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비틀거리며 일어나던 유즈나의 몸이 힘없이 교실 바닥으로 떨어진 것은. 하루카는, 그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열이 심하고 수면 부족이었던 것 같네. 최대한 푹 쉬고 안정을 취하는 게 중요해. 아, 나나세 군. 선생님 지금 회의하러 가야 하니까 잠깐 곁에 있어 줄 수 있니? 중간에 일어나면…. 자신에게 무어라고 설명하던 보건 선생님의 말씀이 아득하게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만약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으면, 괜찮았을까. 최소한, 초콜릿을 줄 때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어야 하는데. 하루카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유즈나에 관하여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보통 이상으로 알고 있다고 여겼다. 그런 자부심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전혀 아니라는 사실이 차츰 다가왔다. 대체 왜 이렇게 무리하면서 자신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나. 자신이 그토록 못 미더운 사람이었나. 그런 생각은 최대한 하지 않으려 했지만, 슬금슬금 피어오르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아무리 물어도 유즈나라면 쉽게 대답하지 않았을 터지만, 마음의 짐 정도는 덜어줄 수 있었을 텐데. 머릿속을 어지럽게 헤집는 생각을 잊고자 하루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유즈나가 일어나면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왜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볼까. 아니면 아무런 말도 하지 말까. 여전히 휘몰아치던 생각이 멈춘 것은 유즈나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였다.

 

“… 하루?”

 

이상하다. 나 왜 여기 있는 거지.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나며 창밖에 시선을 던지다 작은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설마 수업 전부 끝났어? 나 얼마나 잔 거야? 그 소리에 하루카가 천천히 밖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벌써 이만큼 흘러 있었다. 점심시간을 포함하여 쉬는 시간에 여러 번 보건실을 드나들기는 했지만, 시간이 이만큼 흘렀다는 것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카는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유즈나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수업 끝날 때까지 계속 잤어.

 

쿵. 무언가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확실히 오랜 시간 잤다는 생각은 들었다. 일어나니 오늘 아침부터 자신을 괴롭히던 두통은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여전히 목도 아프고 잔기침이 있었지만, 그래도 아침보다는 나아졌다는 것이 스스로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유즈나에게 몸 상태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온종일 잤다니. 오늘 수업 시간표가 머리에 빠르게 지나갔다. 차마 하지 못한 수업 필기가 한가득이었다. 못 들은 수업과 하지 못한 필기는 어떻게 하지. 친구들에게 빌리면 될 테지만 그런 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날리면 안 되는데. 그런 생각만 머리에 가득 차올랐다. 어떡하지, 이제 어떡하지. 그런 걱정이 천천히 밀려왔다. 그러던 생각이 멈춘 것은 하루카의 목소리 덕이었다.

 

“유즈나.”

 

단단하게 굳은 목소리에 유즈나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했다. 아무래도 조금 전까지 하던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은 것 같았다. 하루카는 소리를 치지 않았다. 오히려 낮았고 차분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유즈나는 그 목소리가 무서웠다. 무거운 바위가 자신 위에 툭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지금 수업이 중요한 거 아니잖아. 낮게 이어지는 말은 놀랍게도 유즈나를 차분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손의 떨림이 멈추고, 어지럽던 머릿속이 차분하게 정리되는 것 같았다. … 그럼 뭐가 중요한데? 순간 유즈나는 눈앞이 하얗게 바뀌는 것 같았다.

 

“왜 나한테 이게 중요할 거라는 생각 안 해?”

“그런 게 아니잖아.”

“난 아직 성적이 중요해. 어느 학교에 갈지 정하지 못했으니까.”

“그게 아니라, 너 지금….”

“수영부랑 학업이랑 양립하지 못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더 하지 못할지도 몰라.”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해서 할 수 있는 건, 이와토비 고등학교가 마지막일 수 있어. 나는, 난… 하루처럼 대단한 사람이 아니야. 사람들을 매료할 수 있는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좋아하는 걸 앞으로도 할 수 없을지도 몰라.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리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눈물이 눈가에 불안정하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수영부가 아닌 나는, 쓸모가 없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계속 들어서… 근데 수영부랑 공부를 동시에 해내지 못한다면, 정말 쓸모가 없는 사람이 돼버릴까 봐 무서워. 나는 하루가 아니야. 그러니까, 나한테는 공부가 중요해.

길게 이어지던 말의 끝에서 유즈나가 숨을 들이마셨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급하게 눈물을 훔쳐내는 동안 하루카는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런 순간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가 고민하던 것을 눈치챘는지 유즈나가 말을 이었다. 하루한테 무언가 바라고 이야기한 게 아니야. 나는 그냥… 그냥… 수영부에 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서… 모두에게 좋은 매니저였을까 걱정이 되는 바람에…. 울음 섞인 한숨을 토내했다. 천천히, 숨을 고르던 유즈나가 끝맺지 못한 말을 시작했다. 그냥… 보여드리고 싶었어. 나도 잘할 수 있다는 걸. 근데, 내 방법이… 흐읍… 잘못된 걸까?

쭉 이어지던 유즈나의 말이 끝났으나 하루카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유즈나가 했던 고민과 걱정은 자신과 멀기만 한 이야기였다. 잘 모르는 이야기를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혼자만 짊어지고 있던 것들을 덜어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하루카는 누군가를 위로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랜 고민의 끝에, 하루카는 조금 느린 동작으로 유즈나의 손을 잡았다. 맞잡은 손 위로 눈물이 두어 방울 정도 떨어졌다. 꺼내는 말소리의 끝이 갈라져 있었다.

 

“유즈나.”

“응…. 하루도 내가 잘못된 방법을 선택했다고 생각해?”

“유즈나가 한 건,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정말?”

“응. 대신,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하루카의 말에 유즈나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시 쏟아지는 눈물을 황급히 쓸어내며 자신의 곁을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렸다. 여기 와줘. 그 말에 하루카가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있잖아, 하루. 응. 하루랑… 수영부에게, 난 소중한 사람이야? 그 말이 끝나자 하루카가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응, 소중해. 그 말을 끝내며 유즈나의 손을 잡았다.

 

“유즈나가 수영부 매니저이기 때문이 아니야.”

“그럼 나… 괜한 짓을 한 걸까.”

 

그 말에 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유즈나가 했던 일을 잘했다거나 못했다고 할 수 있을까. 하루카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그가 했던 모든 일과 그것에 할애했던 노력의 크기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유즈나가 했던 말에 대한 대답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다음부터는, 무슨 일 있으면 말해줘.”

 

하루카의 말을 가만히 듣던 유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나 말이야. 이번에 공부하면서 난 내가 좋아하는 것도 못 지키는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강해져야 하는데. 계속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아. 하루카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갠 유즈나가 맑게 웃으며 덧붙였다.

 

“일부러 강해지지 않아도… 하루처럼 날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괜찮을 거 같아.”

 

그러니까, 앞으로는 무슨 일 있으면 꼭 말할게. 만약 내가 앞으로도 흔들리는 거 같으면 말해줘! 목소리는 여전히 울음이 맺혀 있었으나, 흔들리거나 불안한 것은 아니었다. 마치 비가 온 뒤의 맑아지는 하늘 같은 느낌이었다. 하루카는 길게 이어지던 유즈나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에서 빠져나와 이불을 정리하던 유즈나가 손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있잖아, 하루. 응. ‘소중해’라고 말해줘서 고마워. 하루도 나에게, 엄청 소중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빠른 동작으로 보건실을 나서던 유즈나가 하루카를 바라보며 말을 덧붙였다. 나 그동안 하고 싶은 말 엄청 많으니까 들어줘야 해. 알았어. 아까 준 초콜릿 못 먹었으니까 집에 가면서 같이 먹자. 그건… 싫어. 아무도 없는 조용한 복도에 두 사람만의 목소리만 조용히 울렸다.

 

집에 돌아온 유즈나는 책상 위에 잔뜩 올려져 있는 대입 자료를 천천히 정리했다.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닌 단순히 불안함을 진정하려 모았던 것들은 차곡차곡 모아 버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약한 모습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갑갑했던 것이 사라지는 기분이 후련했다. 강하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좋아하는 그들은, 자신을 존재 자체로 좋아해 주고 있다. 그 사실만으로 마음이 가벼웠다. 더 강해진 것도, 앞으로의 길에 확신이 생긴 것은 아니다. 여전히 약하고 불안하지만, 그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그들이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가을날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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